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리 S. 트루먼 (문단 편집) === 서방세계의 평가 === 미국 대통령 인기 순위 조사나 업적 평가를 하면 보통은 10위권 내에 들며 우수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순위에서는 5위에서 9위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으며, 평균 7위로,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대통령이다. 2017년 [[CBS(미국 방송)|CBS]]에서 91명의 역사학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6위로 순위가 책정되는 등 최근에는 평균 6위 정도의 랭킹을 보이고 있다.[[https://www.cbsnews.com/pictures/presidents-ranked-from-worst-to-best-presidential-historians-survey-2017/39/|#]] 전임자 [[프랭클린 루스벨트|루스벨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지도자로서의 자질이나 지도력을 검증받지 못한 채 갑작스레 대통령이 되었지만, 대통령 자리에 오른 후 제2차 세계대전 종결과 전후 질서 확립, 그리고 뒤이어 나타난 소련 공산주의의 공격적인 팽창에 대응하여 냉철한 판단력으로 여러 중요한 결정을 내리면서 침착하게 세계 질서를 이끌었고, 냉전과 6.25 전쟁을 주도하면서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세계의 지도국가로 굳힌 점이 높이 평가받고 있다. 특히 냉전이 미국의 승리로 끝나고 소련이 스스로 무너진 이후 트루먼의 정책이 냉전의 평화로운 종결과 냉전 후 미국의 헤게모니에 큰 기여를 했다는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다만 재임 당시엔 그런 업적들이 묻히는 경향이 있었고, 언변이 정치인치고 능숙한 편도 아니라서 재선을 위한 선거유세를 할 때에는 야유를 받는 굴욕까지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기차]]를 타고 소도시, 지역 마을을 돌았다.''' 서유럽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유럽에 거의 돈을 퍼붓다시피 한 [[마셜 플랜]]은 지금은 냉전을 승리로 이끈 결정적 장면 중 하나로 교과서에서도 제법 거론되지만 이때만 해도 서유럽 돈 퍼주기라고 욕도 많이 먹었다. 퇴임 후 고향 [[미주리]]로 돌아갈 때도 굳이 뒤에서 욕설을 퍼부은 안티들도 있었다고 하니.. 그가 3선에 나서지 않고 한달반 일찍 퇴임한 것도 어찌보면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트루먼의 재임시기에 대통령의 3선 금지가 헌법에 성문화되었으나 '개헌 시점의 현직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은 적용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3선 도전이 법적으로는 가능했다. 1선 후 재출마를 포기했거나 재선에 실패했다면 정치판 속성상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이지, 이론적으론 나중에 다시 도전해서 당선만 된다면 한 번 더 할 수 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면, 정직하고 성실한 태도'''나 위에 나온 그의 좌우명인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에 따른 '''강건한 책임의식'''은 그가 높이 평가받는 요인 중 하나. '재임 중엔 욕을 꽤 먹었지만 퇴임 후 재평가받은' 전형적인 케이스. 그의 미들네임 S를 따서 [[3S]]라고도 한다. '''Stubbornness(고집), Sympathy(동정심), Stoicism([[인내]][* 스토아 철학이란 의미인데, 흔히 극기, 인내로 번역된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도 그를 좋아했으며 [[철의 장막]]도 처칠이 트루먼의 모교(인디펜던스 고등학교[* 현재로는 윌리엄 크리스맨 고등학교.])를 찾아가서 한 연설에서 나온 말이다.[* [[철의 장막]] 항목에 있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연단에서 연설하는 처칠 뒤에 트루먼이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처칠은 처음에는 FDR 대신 대통령이 된 그를 얕잡아보고 못 미더워했으나 나중에는 "다른 누구보다도 서구 문명을 지켜내는데 공을 세웠다"며 트루먼을 극찬했다. 또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도 처음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만큼 트루먼이 중국에 관심을 줄지 우려했지만 나중에 가선 그의 기질을 평가한다. [[CNN]]의 [[래리 킹]]은 그를 "매혹적인 언변가는 아니었지만, 자신을 정확히 표현할 줄 알았던 탁월한 커뮤니케이터"라고 평가했고, 트루먼 정부의 국무장관 딘 애치슨은 "트루먼에게는 리더의 최대 걸림돌인 [[교만]]이 없었다. 그와 그의 일 사이에는 한 번도 사적인 자존심이 끼어든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1972년 12월에 그가 88세로 사망했을 때 칼럼리스트 메리 맥그로리는 트루먼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영웅도 예술가도 [[체스]] 선수도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솔직하고 실수도 하고 어떨 때는 예기치 않은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인간 그 자체였다. 그는 '''평범한 미국인이 위대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는 '''대통령도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